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켄터키 주 역사

12,000년 전의 만큼 오래전에 현재의 켄터키 주의 서부에 속하는 숲들에 아마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살았을 것이다. 초기 유럽인 탐험가들은 켄터키 지방에 많은 다른 부족들을 찾았다. 이 부족들은 체로키 족, 델라웨어 족, 이로쿼이 어족과 쇼니 족을 포함하였다. 탐험과 정착 컴벌랜드 협곡을 지나는 대니얼 분 (1775년) 일부 영국과 프랑스의 탐험가들이 아마 1600년대 후반과 1700년대 초반 동안에 켄터키 지방을 방문하였다. 영국인 탐험가들은 에브램 우드 대령, 게이브리얼 아서와 존 샐링을 포함한다. 프랑스의 탐험가들 중에는 자크 마르케트 신부, 루이 졸리에와 르네-로베르 카블리에 드 라 살이 있었다. 1750년, 개척자의 정찰병인 토머스 워커가 컴벌랜드 협곡을 지나 켄터키에 들어와서 지방의 동부를 처음으로 탐험하였다. 1767년에는 대니얼 분이 동부 켄터키를 탐험하였다. 1769년, 그는 다시 켄터키에 왔고, 그러고나서 블루그래스 지방에서 2년을 보냈다. 1773년, 분은 정착자들의 단체를 켄터키로 이끌었으나, 인디언들은 그들에게 돌아가라고 강요하였다. 사이먼 켄턴은 1773년과 1774년 켄터키 북동부를 탐험하였다. 1774년, 제임스 해러드는 펜실베이니아에서 식민지 주민들의 단체를 이끌고 들어왔다. 그들은 켄터키의 첫 영구적 백인 정착지 해러즈버그를 설립하였다. 분은 1775년 컴벌랜드 협곡을 지나 다른 정착자들의 단체를 이끌고 켄터키에 들어왔다. 분은 켄터키 강을 따라서 정착하여 그의 대지를 "분스보러"라고 불렀다. 산과 숲들은 정착자들과 아메리카 식민지들의 보호 구역 사이에 서있었다. 미국 독립 전쟁이 시작된 후, 영국군들에게 호의적인 인디언들은 켄터키 주민들에 공격을 되풀이하였다. 식민지들은 정착자들에게 약간의 도움 만을 줄 수 있었다. 분, 켄턴과 조지 로저스 클라크는 인디언들의 공격으에서 성공적으로 켄터키를 방어하였다. 1776년, 켄터키는 버지니아의 군이 되었다. 많은 버지니아의 주민들이 켄터키 지방으로 이주해 들어갔다. 영국군의 무기를 공급받은 인디언들은 지속적으로 정착자들을 공격하였다. 1778년, 조지 로저스 클라크는 켄터키 북서부에 있는 3개의 영국령 정착지들에 대항하기 위한 남성들의 작은 단체를 이끌었다. 클라크는 정착지들을 포획하고 이디언들에 영국군의 공급을 중단하였다. 인디언들은 정착지들을 다시 공격하고 나서 적게 자주 일어났다.